'언어의 낙원/따뜻한 돌'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2.10.30 2011년 10월 1일의 일기
  2. 2012.10.17 Dear, deer. 2012 (1)
  3. 2011.09.04 입구
  4. 2011.04.11 터키의 봄 (2)
  5. 2010.12.15 From Tom D.
  6. 2010.10.02 Dear My Love (2)
  7. 2008.09.01 보통 사람
  8. 2008.08.16 타령 (4)
  9. 2008.08.12 my generation
  10. 2008.08.06 철 지나 다시 떠오른 이야기
  11. 2008.08.03 밤의 꽃
  12. 2008.07.15 mother land
  13. 2008.07.07 하루 (2)
  14. 2008.05.10 오늘의 양식
  15. 2008.04.12
  16. 2008.03.21 전쟁 (2)
  17. 2008.03.18 소원
  18. 2008.03.05 나도 인간이야
  19. 2008.02.16 친절한 마음 (1)
  20. 2008.02.06 근황 그리고 인사 (4)






오래된 고목이 쓰러졌다.
나선형의 나이테를 보았다.
그선이 너무 많아 어지러워 셀 수 없었다.
어린 소녀들이 거목의 밑둥이를 둘러싸고 빙글거리며 아기처럼 춤을 췄다.
축제가 있다는 마을을 가기 위해 숲길을 걷던 참이었다.
그 길은 밤길이었으나 눈앞의 모든것이 선명했다.
계절을 종잡을 수 없는 포근한 밤길이다.밤에 운다는 그 새의 울음 소리같은 것은 없었다.
나의 발자욱 소리만이 가을의 소리였다.
그러다 여섯 일곱쯤되는 두더지들과 친절해보이는 아저씨 한분이 숲길 한가운데 비 웅덩이속에서
머리만 내민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을 보았다.
아저씨는 분명 나보다 체구가 커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웅덩이는 아저씨의 어깨죽지에서 찰랑거릴만큼 깊었다.
아저씨가 나에게 인사를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더지 몇몇은 나를 보고 마치 트램폴린 위에서 놀듯 웅덩이를 박차올라 폴짝폴짝 공중점프를 했다.
그와 동시에 터지는 즐거운 비명때문에 그것이 두더지식 인사처럼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카메라가 없었다.
카메라가 없음을 계속 아쉬워하며 더 빨리 마을에 닿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옆을 돌아보니 예전에 알던 친구가 어느 순간 함께 하고 있었다.
친구가 나대신 택시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린다.
집이었다. 축제에 가야하는데 얼떨결에 집에 내리고 만다.
그 집은 나의 집이 아니었는데 한편 또 나의 집이라는 확신이 드는 곳이었다.
운전기사에게 돈을 지불해야했다.
호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영국 동전들을 꺼냈다.
동전이 짤랑거리며 청명한 종소리를 냈다.
건네준 동전은 두세개였지만 이상하게도 운전기사손 위에서 그 동전들은
동전 한마지기의 소리로 떨어졌다.

그리고 눈을 떴다.
조지가 내 침대 앞에서 하품을 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지가 이렇게 기다리는거 보면 12시가 넘었다는 소리다.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었다.
정원으로 바로 내려갔다.
오늘도 날씨가 참 좋다. 바람이 마구 불면서 사과나무 아래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그 나무 아래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10월 1일. 토요일. 앞으로 10일 후, 나는 이곳을 떠난다.







잠이 오지 않았던 새벽 어느 날, 지난 일기를 읽었다.

생각없이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이런 일이 있었던거지.

일년 밖에 안된 일이었다.

이 글은 기억이 난다.

꿈을 꾸고 너무 신나서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고

이 꿈을 잊지 말자 생각하며 글을 썼다.

이렇게 사진이 남았고, 글이 남았다.

내년 10월 나는 어떤 감정을 읽게 될까.

10월 29일이다.

마지막 남은 날엔 더 은밀한 일을 겪고 그대로 들끓었던 마음을 잊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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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 japan. 2012


어떤 기분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날들이다. 이맘때 늘 그렇지 뭐. 말로 설명이 된다면, 이 기분을 즐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숨만 쉬는게 제일 어렵다. 그럼에도 그저 숨만 쉬어도 살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날이 많았다.

몹시 행복한 순간에도 그런 기분에 휩싸일때면, 이 생에서 내가 얻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올해는 가을이 다 뭔가... 그저 겨울이 기다려진다. 그렇게 겨울이 마음속으로 빠르게 돌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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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7월로 회귀하는 문이 열렸다. 돌아온 여름덕에 잠깐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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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톰이 터키로 떠나는 날, 한국에 도착한 크리스마스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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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Dear

You finally get a honor to see my baby photo. ㅋㅋ
I told you i  always cried whenever my mum put me somewhere to take apart from her.
So Everytime she remind of that time, she talked to me like this
" You were really annoying baby. i couldn't take a rest for a moment while i raised you But you think you grew up by yourself "

Look - I wasn't beautiful baby like you.(oh- how modest i am ! ㅋㅋ)
So if we happen to have a baby some day, Considering our great gene ever you will feel regret for saying
" I want your babies" ㅋㅋㅋ

Anyway, I do love you.
Miss you as usual. Still now

Good bye then. 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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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때,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죽어도 연락을 안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사실 그 친구를 친구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직접적인 연락을 안함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나의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친구와 나는 한 무리 안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리 중 다른 친구가 자연스럽게 내 얘기를 꺼내면, 무심하게 그 이야기들을 넘겨듣는 척 하며,
좋은 일이다 싶을 때 우연을 가장해서 연락을 해왔다.
난 이 아이의 그런 점이 너무 싫었다.
그 친구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해보이는 내가 자기보다 인정받는 여러 상황을 생각해내고는
농담처럼 니가 나랑 다른게 뭔데라고 말하며 나를 깔아뭉개지 못해 안달이었다.
예를 들면, 거시경제학 시험에서 내가 A+을 받고 자신이 A-를 받았을 때, 그 친구는 내가 답안을
어떻게 작성했는지를 꼬치꼬치 물으며, 니가 적은 답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왜 자기는 A-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 친구는 하루종일 씩씩거리다가, 교수가 일관성이 없고 나와 더 친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 시험은 답이 틀려도 상관없는 시험이었다.
교수는 답안이 틀려도 논리전개가 타당하다면,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나는 경제라면 치를 떨고 아무런 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내가 경제학쪽을 선택한 건, 내가 이 분야에 너무나 무지하다는 단순한 사고 방식 덕이었다.
이렇게 어리버리하게 살다가는 먼 훗날 돈 때문에 크게 사기당할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돈이 흘러가는 구조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나 무식했냐면, 이걸 잘 배우면 가계부를 요령있게 잘 쓰는 훌륭한 주부가 될 수 있을거라 기뻐했다.
반면, 그 친구는 나와 달리 경제학이 좋아서 망설임없이 선택을 한 친구였고, 경제에 대한 사리분별이 밝은 아이였다.
어쩌면, 분통이 터지는게 마땅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친구가 왜 하필 나를 자신의 경쟁 상대로 찍었는지 속으로 몹시 원망스러웠다.
여자들 앞에서 이것 저것 따져대는 몹시 피곤한 성격을 견딜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이상한 그녀의 교제방식도 맘에 안들었다.
그러니, 내가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할 일은 없었다.
되도록 상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는 신기하게도 점심 저녁으로 밥을 같이 먹었다.
3학년 1학기 말에 기숙사를 나오고 나서부터는, 처음부터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던 그 친구와 아르바이트도 함께 하고
미팅도 함께 하고 술도 자주 같이 마시며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 친구의 심리를 알았다.
이 친구는 나를 세상 끝까지 밀어내고 싶으면서, 동시에 나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내가 옷을 예쁘게 잘 입는다는 칭찬을 받으면, 나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옷을 골라달라고 그러고,
다른 과 남자들이 학회 사무실로 찾아와 내 사진을 찾아보고 가더라 말하면, 이야 너 좋겠다라고
비꼬면서도 내 옆자리에서 수업을 들으려했다.
난 예쁜 여자가 아니었지만, 애들 말대로 뭔가 생기있게 웃고, 특이한(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 분위기가 있어서였는지
꽤 많은 남자들이 좋다고 쫓아다녔다.
나는 남자들이 나를 쫓아다니는게 동생들 말마따나 신기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들은 나를 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_=
동생들은 가끔씩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언닌 집에서 볼 땐 참 별론데, 밖에 나가서 보면 그나마 좀 나아보여.
부글부글거리며 듣고 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_=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때까지 쭈욱 남녀 공학을 다녔지만, 이렇다 할 사건도 없었고 (고작 있었던 사건이라고는
밤축제 때 남자 애들한테 둘러쌓여서 원 안에서 소심하게 춤 춘거?
고 3 쉬는시간에 필통 없어졌다 다시 돌아왔는데, 이 여자야.. 칠칠맞지 못하게 필통을 아무데나 놔두고 다니는거야.
정신 챙기고 공부 열심히 해라. 라는 쪽지를 받은거 =_= 뭐 이 따위거 밖에 없다 ㅡ.ㅜ),
과 내에선 이쁘다 소문난 애들끼리 무리를 지어 따로 다녔기 때문에, 나는 내가 관심을 받을때마다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나보다 더 당혹스러워하는 이가 바로 이 친구였다.


이 친구는 누군가가 나에게 고백을 할 때마다, 우연찮게도 그 자리를 목격하거나 소문의 핵을 가장 먼저 접했다.
그게 나한테는 불행이었다.
막 복학해서 친구가 없다는 남자 선배한테 어정쩡하게 붙잡혀서 몇 번 밥과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었는데,
친구들이 입을 모아 그 선배 우리한테는 한번도 아이스크림 사준적이 없다고 날 놀려대서 내가 그런거 아니라고
친구들 열댓명을 싹 몰고 가서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라고 일을 친 적이 있다.
그때 그 선배는 사색이 되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알고보니, 선배는 남에게 한없이 퍼주는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휴학을 하고 외로웠던 찰나에 만난 인연이라 선배와 나는 투닥거리면서 서서히 친해졌다.
그 후에 선배가 과대표가 되어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나는 나도 모르게 과의 중심에 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선배는 나중에 나를 속인 집주인(부부가 같이 산다고 말했지만, 사실 별거상태로 아파트에 혼자 살았고
그 집에 날 끌어들여놓고 저녁마다 동네방네 떠나갈듯 부르스를 틀어놓고 밥을 같이 먹자고 식탁을 차리던 작자)에게서
집세를 돌려받으려고 그 망할 놈 앞에서 무릎을 꿇어주기도 한 고마운 사람이다.


하여튼 이 선배가 새벽에 술 먹자고 불러서 나갔더니, 얼굴만 겨우 아는 남자선배들이 궁상맞게 모여 자작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날 왜 부른거야?
혼자 있기 민망했던 나는 집이 근처인 그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는 쏜살같이 달려오면서도 왜 선배들이 너만 불렀냐며 나를 닥달했다. =_=
날 부르면 너도 올거라 생각했겠지라고 좋게 말했지만, 그 친구는 꽤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남자선배들 다 모아놓고 한 말이 "얘 별명이 뭔줄 아세요?" 였다.
- 얘는 통발이에요
예상치못한 말을 들은 선배들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이유를 물었다.
- 남자를 통발에 물고기 걷어올리듯이 끌어들이거든요.
주말마다 다른 학교 남자애들 데려와서 캠퍼스 소개시켜 주는게 취미에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할때도 어떤 남자가 얘한테 반해서 비오는 날 얘한테 우산 주고 자기는 비맞고 가구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얘 진짜 싫어했잖아요. 몸 약한 척하면서 공장 남자 다 후린다고...
XX에서 차끌고 온 남자는 얘랑 밤 샐려고 집에 안갔구요.
도서관 알바할땐 얘보고 결혼하자고 고백한 남자도 있어요.
버스 타고 가다가도 남자가 좋다고 따라와요.
얜 인기 많아요. 선배들이 이러시지 않아도 돼요.


나를 칭찬하는 듯 했지만, 꽤 악랄한 조롱이었다.
이 친구가 나에게 저지른 수많은 악행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이런 저런 일들이 쌓여 이 친구가 내 친구들에게서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고 학교를 일주일간 안 나왔을때,
당사자인 나만 그 친구가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설득해 술자리를 마련하고 그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 친구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한없이 마음이 여린 자신이 세상사에 적응을 못해 강한 사람들이 툭툭 내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리곤 술을 연거푸 마시며, 나를 벼락같이 껴안고는 나 미워하는거 아니지? 라고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했나.
나야말로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런거 아니라고 그날 그 아이 등을 한없이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나
나는 절대 내 나이 또래 남자를 향해 먼저 웃으며 말을 걸지 않는다.
마음이 한없이 꼬이고 퉁명스러워졌다.
얽히는 남녀관계에 재수없게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예쁘지 않은 여자가 더욱 못생겨진 이유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내 인생에 악영향을 끼친, 우리는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자처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린 친구잖아라고 술을 즐겁게 마시던 그들이 사실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도 떠오른다.
이어,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며 항상 내 전화가 먼저이길 바라는 몇 몇 사람들이 나에게 얻을게 있을 때 요령있게 연락을 할 때면
인생은 왜 이렇게 덧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이런 망상으로 한없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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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밤, 혼자서 찐만두를 먹으며 집을 지키고 있다.
랄로는 앤트 병문안 차 새벽 버스를 타고 창원에 가고, 룸룸이는 친구랑 남산갔다가 뒷날 남이섬 간다고 가방 싸들고 나갔다.
룸룸은 12시가 넘도록 침상에서 뒹구는 나를 조용히 내버려두고 기특하게도 시키지도 않은 빨래를 돌리고 집안 청소 다하더니,
잠깐 나갔다올께라고 말하고 4시가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왔네.
남자가 되셨구랴. 누구 머리로 해달라고 했길래 그렇게 된거야.
내가 한마디 했더니, 머리 감은 후에도 이 꼬라지면 어쩌지라고 거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잠시 후엔 정신을 차린듯 열심히 메니큐어로 손톱을 치장했다.
나는 옆에서 게으름뱅이처럼 뜨거운 라면을 훌훌 입에 털어넣으며,
누굴 만나려고 이렇게 꾸미시나. 은근한 말투로 힘있는 추궁을 했지만 친구들 이름을 다 알아내지 못했다.
에잇. 그까짓거 궁금하지도 않아. 하지만, 남이섬은 정말 별로라고! =_=
올림픽 경기는 내가 보는 것 마다 다 지고, 양궁, 탁구, 배드민턴, 수영 4경기 다 내가 치룬 것 마냥 기운이 없다.
중국 색히들 욕하는 것도 이제 지친다.
이가 빠질 것 같아서 자다가도 이를 만져볼 정도다.
나의 미모과 젊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올림픽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게 올림픽이야? 내 생각엔 짱꼴라들이 던져주는 초콜렛 메달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안달할 필요없는 것 같다.
올림픽 매니아로서 말하지만, 지금까지 본 올림픽 중 최악이다.
동메달을 집어던지고 나온 아브라하미안의 심정. 이건 개최국 중국을 빼고 누구나 한번쯤 느낄만한 감정 아닐까?
앞으로 더 흥분할 일이 있겠나 싶지만, 또 한번 중국의 편파판정과 매너없는 응원석을 지켜본다면
고질라로 변신하여 도시락 폭탄을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


시시한 티비 프로그램을 뒤로한 채 (건국 60주년 행사랍시고. 이건 뭐. 이명박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다.미친 짓도 정말 상상불허 가지가지다.) 다운받은 영화 한 편을 건성건성 보고 룸룸이가 새로 산 메니큐어로 흰둥이에게 저지른 만행(검은코에 진분홍색 메니큐어를 칠하고 달아났음;)에 뒤늦게 분개하며 리무버로 코를 성심껏 지우다가 그만 슬픔에 빠졌다. =_=;
메니큐어는 지워졌는데 얼룩이 생겼다. 검은색이 그 검은색이 아니다.
흰둥이 코에 광채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코팅이 벗겨진 거 같다.
으아아아악-



흰둥아. 지못미 ㅡ.ㅜ
너와 나의 신세란.... 우린 왜 이런거니.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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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secte

어제밤, 클레르 카스티용의 <로즈 베이비>라는 책을 읽었다.
클레르 카스티용. 이 여자는 도서관을 들를 때 마다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작자다.
160평방미터의 자료실 서가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도대체 읽고 싶은 책이 없군.
이렇게 가벼운 절망에 휩싸일때면 맨 마지막 책꽂이에서 이 사람은 나 들으라는 듯
허공에 대고 이렇게 입을 뻐끔거린다.

&quot;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quo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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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엄마와 단둘이 뒷산을 걸었다.
서울만 올라가면 전화가 싫다며 연락두절하는 불효녀가 얌전히 승복했다.
여기는 거제도니까. 엄마의 세계다.
난 그동안 엄마와의 단독 대면을 두려워했다.


 
거제도행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명절선물을 사러 부리나케 동네 슈퍼를 전전했다.
엄마는 딸이 빈손으로 집에 오는 걸 싫어한다.
이왕이면, 10분 거리에 사시는 큰아버지댁 선물도 사오면 더 좋고!
이게 우리 엄마가 생각하는 다 큰 딸래미의 도리다.
나는 속으로 우린 가족이잖아! 이게 뭔 격식이여 라고 투덜거린다.
엄마는 내가 집에 누워서 빈둥거리면 넌 손님이 아니란다. 집안일을 도와야지라고 퉁을 주고
이렇게 명절이 되면, 남의 집에 들이닥친 집들이 손님 취급하며 빈손인 나를 꾸짖는다.
그러나, 동네 슈퍼를 이 잡듯 들락거려도, 그럴듯한 선물세트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샀어야 했는데.
랄로와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앞일의 뒷감당을 상상하며 뒤늦은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
세자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늘이 드리워진 길바닥에서 짜증을 내다가 좀 더 생각을 해보자며 쭈그리고 앉았을 때,
그 산을 보았다. 
가까운 아파트 뒷산 너머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묘객 5명이 소실점이 되어 산 중턱을 총총이 내려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의 가슴은 소녀처럼 쿵 내려앉았다.
이야. 저 산에도 묘가 있구나...
선물 걱정은 제껴두고, 내일은 저 뒷산이나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엄마가 나도 같이 가자며 모자를 찾아 쓰시는 것이다.




3.  엄마가 뿔났다


김수현씨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초기작 <목욕탕집 사람들>에 등장하는 전 등장인물이 하물며 단역까지 딱총 쏘듯
자기 할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를 쓰며 나불대는 걸 보고 그만 정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확실히 김수현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 나오는 작품은 몇 편만 테스트 삼아 보다가 아직도 딱총을 물고 있구나 싶어서 중도포기한게 대부분이었고,
이 여자가 이제 좀 사람같구나 싶었던 작품이 <부모님 전상서>였다.
그리고 그때 풀린 마음으로 요새 매주 찾아보는 드라마가 <엄마가 뿔났다> 라 말할 수 있겠다.
요즘, 이 드라마는 엄마 김혜자가 받은 1년의 휴가로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 도대체 말이 되느냐. 이 드라마 막판에 환타지로 가는 거 아니냐. 실망이다.
- 세상 모든 엄마들이 대게 일생을 그렇게 사는데 뭐가 잘나서 1년 휴가를 요구하느냐
- 우리 시어머니가 저렇게 나오면 전 정말 못 살것 같아요. 아니 며느리만 뭔 고생이래요.
- 내 보기엔 남편이 젤 불쌍타. 남편에게도 휴가를 주는게 공평하지 않아?
- 둘이 번갈아 1년씩 집 나가면 집안꼴 좋겠다 !
- 저것도 아들 딸이 그나마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니 요구할 수 있는거지. 나같은 사람은 ...
- 돈도 많다 ! 평생 아둥바둥 돈 아끼며 살았다는 여편네가 다 늙어서 한달 집세로 60만원을 쓴다는게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야?
-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집에서 1년 쉬는거랑 뭐가 다른건데. 굳이 나가 살 필요있나



이 드라마의 작가도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닌, 제 3자인 나는 이토록 부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훑어보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나는 과연 엄마에게 저런 휴가를 줄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이 생각만을 지배적으로 하며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자 다짐했던 나는 이 사회의 외계인이었다.



엄마가 된 이상 희생은 당신 스스로 선택한 당연한 의무라고 말하는 꿈도 야무진 50% 이상의 아들 딸들과 부딪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저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절반이 품은 진짜 마음이라면 나는 엄마를 가끔은 가여워 해 줄 마음 넉넉한 자식을 키워낼 자신이 없으니
엄마가 되는 걸 포기하고 싶다.
왜냐면, 나는 늘그막에 휴가를 한꺼번에 받아내는 김혜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자식은 아무리 착하게 키워도 부모의 은혜를 잊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나는 나라는 존재로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더없이 착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영악해질 수 있는 딸년.
그러니 나는 아마도 클레르 카스티용이 말하는 <로즈베이비>의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이미 늙어버린 엄마에게 휴가를 준다는 발상 또한 얼마나 건방진 생각인가.
왜 우리는 엄마가 되면, 자식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픈 마음마저 죄스러워 해야하나.
엄마라는 타이틀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까.





4.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라는 책에서 스티브 도나휴는 이렇게 말했다.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에는 꼭대기가 따로 없어서,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드디어 해냈다. 이제 부모 역할을 끝냈다"라고 외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도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이다 . 
그러니 오아시스가 나타나면 망설이지 말고 반드시 쉬어가라.



 
5. 

음악을 안 들은지 꽤 됐다.
몇 달째 mp3 플레이어에 변하지 않고 담긴 노래는 트란실바니아 ost 가 유일하고,
신곡이 하나씩 나올때마다 당일치기로 듣고 빼는걸 반복하다 며칠 전에 펜타포트 라디오 실황 녹음본을 추가했다. 트라비스만.
정정하자면, 모든 음악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다 흘린다.
m-net을 통해 뮤직비디오로 다시 들은 유희열 소품집 여름날도 가사가 마음에 안든다.
왜 저렇게 쓴거지? 
유난히 맘에 안차는 노래 한 곡을 집요하게 매도하고, 인터넷으로 예약 주문한 소품집을 취소했다.
설마 이 다음에 음반값 뛰는 건 아니겠지... =_=;
음반 재태크 걱정을 잠깐하다가 1만장 더 찍었다는 소리에 악마처럼 안도하며 깨끗이 마음을 접었다.ㅋ
기획사에 새끼 고양이 얼만지나 문의해봐야겠다고 여유작작 악담을 한다.
원 세상에. 새끼 고양이를 위한 소품집이었단 말이야? 그저 내 감상일 뿐이다.
랄로는 여자는 얼굴 예쁘면 모든게 용서된다고 뮤직비디오 속에서 이 남자 저 남자 예쁘게도 갈팡 질팡하는 신민아를 두둔한다.
그 말에 나는 정색을 하며, 왜 나는 가끔씩만 예뻐 보이는거냐고 절규했고,
랄로는 도대체 어쩌자는거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뒤틀린 심사를 바로 잡으려고 다시 찾아들은 곡이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다.
작년에도 아스팔트 쩔쩔 끓을 때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차이을 두자면 그땐 미궁을 안들었고, 올해는 미궁을 듣는다는 것이다.
17분짜리 미궁을 6분 가량 듣다가 여러번 심장을 쿵쿵 놓치고 결국 꺼버렸다.
미쳤다. 볼륨을 크게 해서 온 동네에 귀기가 넘친다.
미안해요. 동네 어르신들.
어제는 엑소시스트를 보았고, 오늘은 미궁을 듣고 내일은 내 다리 내놓으라는 전설의 고향을 볼 예정이다. =_=
정말 여름이네. 공포영화광이 이렇게 소심해졌으니... 늙었다고 또 낙담한다.
75년도 초연 녹음은 도저히 들을 수 없다 판단하고 이번엔 무서운 마음을 다잡으려고,
황병기 선생의 곡 해설이 함께 한 동영상을 찾아 들었다.
휴... 엄청난 17분이다.
황병기 선생 얼굴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
미궁. 이건 엄마들을 위한 살풀이곡 같다.
요즘 엄마 생각 너무 많이 하나. 전화는 죽어도 안하면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여러 번 음악과 얼굴이 겹친다.
너무 좋은데, 이곡. 얼굴없이 들으라면 다시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밤에 듣지 마세요.


 




가야금. 장구 : 황병기   /  목소리 : 홍신자  /  작시 : 서정주
남창  : 김경배  /  대금  : 홍종진  /  거문고 : 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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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완전한 기쁨




밤의 공기는 공모하고 있어.
증오는 사랑과, 고통은 기쁨과 모든 것이 밤의 공기 속에서 손을 잡아.
밤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밤이라는 건, 모두가 사이 좋아지는 시간이야.




대학교 여름 방학때 모르는 남자들과 친구 몇명이 모여 새벽에 밀양을 간 적이 있다.
몹시 보수적인 엄마는 그 날 밤도 내게 전화를 해서 집에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양심에 가책도 없이 네. 라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고 시속 140km를 내달리는 남자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밀양 표충사가 있는 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새벽에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숲길을 정처없이 걸었다.
이름 모를 밤의 새가 가끔 날개짓을 하며 귀신처럼 울어댔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숲의 길은 이슬맞은 풀과 커다란 바윗돌의 연속이었다.
신발이 젖은채로 무릎을 덮는 풀길을 헤치고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밤공기는 상쾌했고, 나는 그날 밤 아르바이트의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리는 것 같았다.
이것은 모험이다.
같이 온 남자 따위 신경도 안쓰였다.
중요한건, 이 새벽에 인광만 보이는 밤의 숲을 걷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신성한 밤의 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방천지에 하늘을 찌르는 위엄있는 나무의 풀비린내가 축제의 불꽃처럼 향기롭게 터졌다.
어둠 속에서 나의 후각과 촉각. 청각은 은밀한 비밀의 공모자처럼 손을 잡고 남다른 능력을 펼치고 있었다.
흙길을 한참 걷자, 달빛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의 들뜬 숨소리를 닮은 물의 소리가 낮게 울렸다.
눈 앞에 무릎 깊이의 시내가 나무 사이 사이 흐르고 있었다.
물은 무섭도록 까맣게 흘렀다. 우리는 순간 하나의 사람처럼 낮게 탄성을 질렀다.
나와 일행은 잔잔한 물소리에 압도되어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풀벌레 소리가 다정하게 파고드는 숲의 아련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의 나무들이 일제히 바람에 우수수 흔들리고 수많은 별들이 고흐의 그림처럼 빛나고 있었다.
곧 마녀가 나타날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았다.
그리고 얼음장 같이 차가운 시내 한가운데 들어가 달빛에 의지해 손바닥에 담긴 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그 때, 이름만 겨우 알던 일행 속 남자가 갑자기 등뒤에서 나에게 물을 흩뿌리며 묘하게 웃었다.
짧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물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렸다.
나는 목숨을 위협받은 몸집이 작은 들짐승처럼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절이 나타날텐데, 예고없이 강간당할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나는 향기가 지독한 여름밤의 꽃처럼 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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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완전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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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거실에 누워 잠만 잤다.
10시 반에 눈을 잠깐 떴을 땐, 앗~ 오늘 무파라 아줌마를 만나야하는데! 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닌텐도를 붙잡고 멍한 상태에서 열심히 무를 사서 방에 옮겨놓고 좋아라했는데 그만 밧데리가 나가
닭 쫓던 개같은 모양새로 우중충하고 후덥지근해보이는 창 너머를 한참 바라보았다.
어휴~ 이깟게 뭐라고.
대박의 꿈은 깨끗이 접고 다시 누워서 자는데, 일찍 일어나서 집안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던 랄로가
언니. 밥은 어쩔거야라고 나를 괴롭혀서 그래 그래 우리 그럼 라면 끓여먹자. 달래가며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출발 비디오 여행만 보고 밥먹자 말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늘 나에게서 밥상을 받아먹던 랄로가 참다 못해 너무해라고 외치며 지갑을 들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땐, 또다시 정신이 들어
얘야~  백세카레 라면이 없으면 너구리를 사와야 해. 그리고 초코칩 추가~! 라고 외쳐 랄로의 빈축을 샀다.
랄로가 차려다 준 라면을 먹으면서, 너구리 맛이 변했군. 아무래도 불매운동을 해야겠어.라고 침을 튀기며 흥분했고
랄로는 그래. 이제 농심은 믿을수가 없다니까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밥상 물리고
또다시 흰둥이를 안고 잠이 들었다.
꿈도 꿨는데 기억이 안나네.
어젯밤에 피트병으로 산 맥주를 세수대야에 붓고 색이 변색된 옷 2벌을 담궈놨는데,
오늘 하루종일 온집안에 술냄새가 진동해 랄로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의 수위가 높아질 즈음에 미라처럼 일어나서 손빨래를 했는데 그닥 맥주의 효과를 못 본 것 같다.
괜한 옷만 취하게 만들었군....
며칠 전에 본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떠올리며 옷에게 말을 건다.
넌 쿠우다 ~~~~~~ =_=
술 먹으니 좋지?
술 먹고 취한 쿠우가 춤추는 장면을 떠올리고는 혼자 화장실에서 킥킥거리며 빨래를 했다.
사실 내 손도 취한 것 같다. 맥주에 손을 담그다니.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참...  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간다.
오늘 9시 뉴스 보니 영덕은 37도였다는데, 나는 거실에 누워서 팔자좋게 여름을 벗어났다.
11시가 다 되었을 즈음엔 하루종일 외출했던 룸룸이가 돌아왔다.
미친 날씨다. 얼굴에 기름이 흐른다 . 부탁한 마스크 시트 사왔다. 종알 종알거리며
화장실과 거실을 왔다 갔다 옷을 하나씩 벗어재끼더니 떡볶이와 순대를 내밀었다.
방구석에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던 랄로가 아까 무섭게 방문을 열고 나와서 굶주린 어린 여우 같은 퀭한 눈빛을 쏘아대며
순대가 먹고 싶어라고 말하고 들어가더니, 내가 반응이 없자 룸룸이에게 문자를 보냈나보다.
순대는 맛있는데 떡볶이는 참 맛이 없었다.
신촌 현대백화점 거리 2번째 포장마차집 떡볶이 맛 별로네요. =_=

12시 57분.
하루종일 잤지만 난 또 자야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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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요일 저녁 11시에는 동생들과 거실에 모여앉아 <막돼먹은 영애씨>를 꼭 챙겨본다.
오늘의 영애씨는 어린 그와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
귀엽게 자른 앞머리. 남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영애씨가 오늘따라 날씬해 보인다.
연애를 하면 정말 예뻐지는걸까.
그저 연출된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임에도 나는 또 심각해진다.
뭔지 모르지만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영애씨처럼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한없이 젊어지고 싶다.
겨우 29살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늙어버린건지 모르겠다.
나를 늙게 하는 나쁜 마음은 퍼다 버리고 싶다. 저 밤의 구덩이에


2.
설겆이를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골목을 달음질쳐 나갔다 들어오는데
며칠 전부터 버려져 있던 제법 괜찮은 안락 의자가 또 한번 눈에 밟혔다.
왜 아무도 안들고 가는거지?
전 주인은 마음좋게 쪽지를 남겼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의자의 상태는 꽤 좋아서 그 골목을 왔다갔다하는 내 마음을 자꾸 흔든다.
오늘도 수 초동안 가로등 아래 홀로 놓인 의자를 바라보았지만 절실한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주인은 아닌가보다.


3.
도서관에서 빌려온 I, Van Gogh 를 보던 랄로가 한숨을 푹 쉰다.
이거 보니까 마음이 진짜 무겁다.
왜?
랄로는 내가 반 고흐 같단다.
근데 넌 테오가 아니잖아. 그러니 걱정하지마.
난 살아 생전에 성공하리라 다짐했었다.
어젯밤 그 책을 몇번이나 훑어보다가 심정이 더욱 절박해졌다. .


4.
어지러진 책상을 정리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사이에 나뒹구는 mp3 플레이어를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라디오를 벌써 2주간이나 건너뛰었다.
오늘 좋은 노래 많이 나오네.
로또 맞은 것 처럼 조용히 바스락거리며 웃었다.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들이 신곡들 사이에서 오래전 좋은 기억처럼 출렁거린다.
라디오 멘트처럼 나도 오늘 이 날을 오랜 시간 후에 불현듯 기억해낼수 있을까 질문해본다.
목욕 후, 말랑해진 발가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오랜만에 공들여 맑은 호박빛의 펄 메니큐어를 칠했다.
어쩜 이렇게 빛이 고울까. 내가 좋아하는 색 그대로야.
왼손, 오른손, 왼발, 오른발
거침없이 반짝반짝거린다.
오늘은 보기 드물게 행복한 하루구나 싶어 마음이 푸근하다.
즐거운 마음. 이 마음 그대로 잠들어야지.
잠들기 12분 전이다.




5. 

안녕. 4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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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언가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폭풍우 치는 날 두루마리 휴지를 커다란 봉지 가득 채우고 고급 미용실을 다녀왔다.
고층의 미용실 통유리에서 내려다 본 바로 앞의 건물들은 고무로 만들어진 것 마냥 비바람에 무섭게 휘청거렸다.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왜 모두들 미용실에 오는거지? 이런 날 머리에 멋을 내는 게 무슨 소용이야"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앞건물들을 못본 척 하는 미용실 손님들이 이상했다.
신기하게도 이곳과 저곳은 마치 다른 세계인 마냥 다른 음악이 흐른다.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르다 뒤를 돌아보았을 땐 고등학교 때 나의 원수였음이 분명한 남자 아이가 시위라도 하듯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미용실 고객 중 한명이 갑자기 클럽의 사회자로 변신하여, 나의 두루마리 휴지 봉지를 당당히 나꿔채며 말한다.
"이건 저 사람에게 줄께"
두루마리 휴지가 나의 원수의 손에 전해지는 걸 분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나는 소리를 쳤다.
"이럴 순 없어. 이 아이는 나의 원수야. 주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주겠어"
휴지는 비바람에도 젖지 않았다.
전화가 울리고 나는 10시 14분에 눈을 떴다.
오늘 눈같은 봄이 마지막임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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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정

 

      
어제부로 2차례의 예매전쟁을 마친 동닷에 이제야 슬그머니 들렀다.
나는 이번 전쟁에서 냉큼 빠졌으니 다소 초조해보이는 대다수의 예매 관련 글들을 가뿐하게 읽고 넘긴다.
고양/성남까지 갈 자신도 없고 자금사정도 만만찮고 이런 공연을 기획한 률에 대한 뭔가 모를 섭섭함이 한데 섞여서
나는 3번 다 간다. 률 공연은 비싼만큼 값을 한다. 얼굴 한번 내미는 해외스타의 내한 공연에 비하면 싼 편이다.
(도대체 무슨 논리지? 그들의 체류비와 해외 세션비는 어쩌고 이런 계산이 나오는건지=_=)
이승환 공연은 더 비싸다.
90인조 밴드가 올라오려면 우리 률은 수익이 한푼도 안나온다. 라고
팬들 스스로 팬들 사이에 오가는 대수롭지 않은 원성을 태산같은 위험요소로 여기며
크나큰 마음보로 다독이는 이런 상황도 꼴 보기 싫었다.
그냥 푸념일 뿐이잖아.
가끔 그 공간 특유의 불필요하고 낯뜨거운 배려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6월 공연 예매를 일주일 앞두고, 3번을 다 가야 열성팬 도장을 찍을 수 있는건 아니잖아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5번째 줄 바깥으로 밀리면 모든게 끝장난거야.
불안에 떠는 이 이중적이고 히스테릭한 나의 모습이 조금 웃기다.
김동률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면서 두번째 겪는 냉소다.
나에게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 스케일의 우상은 없다고 마음을 놓았던 때가 엊그제인거 같은데,
일주일 뒤엔 그 올림픽 체조 경기장 안에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겠지... =_=


그래. 나도 공개방송 스타일은 싫다.
매번 몇 곡 부르고 아쉽게 돌아서는 그 자리 이젠 더이상 보고 싶지 않고.
어디 한번 전설의 90인조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에헤라. ㅡ.ㅜ
그저 한번 찾아가는 6월달 최선을 다해달라고 이렇게 마음으로 기도하는 수 밖에.


4월.5월 다 지옥이야- 아아아



ps)  며칠 전, 막을 내린 고흐전. 입장료 수익만 58억이란다.
      참. 대한민국 엄마들의 파워란.
      콘서트 관람도 전람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단돈 만원으로 입장하는 순간, 음악이 코앞에서 생생히 연주되는거다. ㅋㅋ
      그리고 58억이 떨어지면 얼마나 좋아.
      아이고.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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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오후.
답답한 마음에 이곳을 떠나고 싶다라고 쓰고 한참을 모니터를 바라보았는데,
그 글씨조차 너무 초라하더라.
창백한 윈도우의 하얀 바탕이 너무나 광활해서 떠나고 싶다라는 말은 금새 지워질 것 같았다.
두세번 지웠다 쓰다를 반복하다가 떠나고 싶다라는 말이 외롭지 않기 해서는 저 문장을
100번도 더 넘게 써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건 너무 바보같은 일이다.
차라리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보기로 한다.
어디로 가고 싶은데?


언어가 없는 곳.
말이 필요할 땐 가벼운 미소로 소통할 수 있는 곳.
친구도 애인도 전화도 없는 곳.
콘크리트가 없는 이국의 붉은 대지로.
그곳이 어디든, 붉은 색 사루비아의 밭을 일구고 맨발로 태양 아래 가만히 앉아
매일 매일을 초여름처럼 보내는 것이 소원이다.



2.

이 봄 이대로 가면.

바보같이 이미 많은 걸 놓쳐서
나는 해를 더할수록 크고 작은 상실과 결핍에 맥없이 관대해지고 있다.
매년 돌아오는 인생의 좋은 시절은 오늘도 구멍 숭숭 뚫린 넋두리에 참 잘도 간다.
잘 가세요. 잘 가라구요.
제발 왔다고 인사 좀 하지 마시라구요.
무서워요
차라리 나를 허영의 시장에 내버려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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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쭉 미친 마음이야.


전세 9천에도 집이 안구해져서 동분서주하느라 충분히 기운 다 뺐고,
그럭 저럭 이사했더니, 32살 먹은 주인 색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랍시고
욕실에 정사각형 거울 달아달랬더니,
손바닥만한 보름달 거울을 들고 와서 이게 미관에 좋거든요.라고 말하고.
방구석에 어이없는 구멍이 여기 저기 있길래 막아달랬더니,
자기한테 필요한 기능이 있어서 지금 막으면 2년 뒤에 또 뚫어야한다고.
이딴 소리해서 그럼 나보고 2년내내 저 구멍을 영문도 모르고 보라는 말이냐고
나 지랄하게 만들고.
부엌에 페이트칠 마감 안됐길래 다시 페인트 칠해달라니까,
세상에 그게 컨셉이래. 미친 색히.
이거 지금 칠하면 2년 뒤에 제가 디자인 복구해야하는데, 좀 그렇네요.
그 말 같이 들은 네 명이 모두 거품을 물었어.
아. 찍어서 올리고 싶다. 불끈. 넌 삼류 디자이너야.


하나로 텔레콤 색히들은 접속 장애 몇번이나 말했는데도 모른척하더니
오늘 인터넷 완전 뻑나니까 그제야 고쳐주겠다면서 티비 서비스도 저희꺼 이용하시면 안될까요라고 말하네.
얘네들 미친거 아냐?
이보세요. 다 필요없고 인터넷이나 좀 제대로 해주세요.
꼭 내가 아침부터 이렇게 소리를 질러야겠냐고.


각종 이전신고에 주소변경. 가구 구입. 건강보험료에 카메라 수리 별별게 다 신경쓰이게 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래?
내가 꼭 화를 내야 해?
왜 화를 안내면, 빙글빙글 웃으면서 자기 실속만 차리려고 헛수작이냐고.
나 지금 예민하다고. 지금 전화받으면 화가 날 것 같다고
전화 좀 적당히 하라고 그렇게 좋게 말해도 매번 까먹었다고 내가 귀찮냐고 ..
물개 너는 또 왜 이러는건데. 내 심장 지금 두근반 세근반. 완전 썩었어.
혼자서 마음 좀 달래자.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야?


게다가...
김동률씨. 당신말야.
콘서트 왜 그런건데. 내가 이제야 공지 보고 완전 넋이 나갔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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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회사다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말이 참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만해도 나는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먼저 살갑게 말을 걸만큼 에너지가 넘치지 못했다.
나의 주특기는 무관심이다. 미움도 사랑도 특별한 의도도 없다.
상대에 대한 무시나 경멸도 아니다. 그저 관심이 없을 뿐.
그런 태도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대표하는 하나의 단어였다.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쓰는 아이.
언제봐도 독립적이고 똑똑하고 재주많은 사람.


주변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가 혼자 노는 모습들을 동정하기보다 동경했었다.
심지어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아침 저녁으로 매일 스케줄 맞춰가며 밥을 같이 먹는 일들이 고단하고 부질없다 생각하여
가끔씩 연락도 안하고 홀로 밥을 씩씩하게 먹는 모습까지도 감탄했다.
하여튼. 안희정 넌 대단하다니까. 니가 전교를 왕따시킨다.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은근히 외로웠다.
나. 그렇게 강한 사람 아닌데...
하지만. 이상하지.
이 외로움은 가짜였는지, 누군가 다가오면 금새 귀찮다는 생각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나는 본의아니게 나를 적극적으로 좋아해준 몇몇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은데 너는 왜이렇게 안친해지는건지 모르겠다고 투정을 하던 사람들이
때로는 나를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를 많이 좋아해서, 결국은 미워하게 된 사람들 때문에 인생이 조금 괴로웠다.
그들은 모른다.
나는 누군가와 급속히 친해지는 과정에서 오는 부작용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었다.
나는 기만과 과장에 지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신입이라는 딱지를 달고 경력만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에 어렵사리 입사했을 때는
윗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은 케이스였다.
어린 것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고, 지 할일만 딱딱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내가 버릇없다고 나서서 성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겉모습만큼은 친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친절했던 사람은 내 바로 윗 사수였던 K.
K는 본래 뼈속까지 친절한 성품의 사람은 아니다.
득이 없는 일엔 굳이 나서지 않는 영리하고 냉정한, 전형적인 AB형의 성격을 보여주는 양면성이 몹시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가 자신의 첫 후배라는 이유 하나로 나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주었다.
입사한지 한달이 지나도 토막말만 겨우 겨우하는 음침한 나를 외근 핑계삼아 떡볶이집에 데려다주었고,
언제나 내 책상 앞에 먼저 다가와 재밌는 농담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화장실에 틀어박혀 오전내내 대성통곡을 했을만큼 나를 호되게 혼내며 업무를 철저히 가르쳤을 때는,
자신을 버릇없이 째려보며 밥먹을 기분이 아니다라고 내뱉는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가 따뜻한 칼국수를 사먹이며 마음을 달래주었다.
어느 날인가는 시무룩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나를 불러 아직 여자친구도 안태워줬다는 갓 뽑은 스포츠카로 집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지나가는 말로 저 그 차 좋아해요. 좋으시겠어요라고 했던 말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 아니 내가 이걸 왜 타요. 여자친구나 태우세요. 저는 그냥 지하철 타고 갈께요.
라고 말하는 나를 애써 태웠던 건 이번이야말로 이 아이의 말문을 열어보겠다는 심산이었을지도.
목적이 무엇이었든간에 그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옆좌석에 앉아 불빛이 일렁이는 새까만 한강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나도 모르게
아 예쁘다. 사진 찍고 싶다라고 중얼거린 것이다.


- 너 사진 찍을 줄 알아?
- 뭐 그냥 심심해서 동호회 좀 나가요.


K는 내 입에서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몹시 신나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아 - 이 아이는 사진을 좋아하니 사진 이야기를 하면 말을 좀 더 많이 하겠구나 판단했던 모양이다.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사진 이야기만 해대는 K의 친절함에 결국 굴복하여 가방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고 말았다.
그때 친절한 K는 차를 도로 모퉁이에 세우고 보조등을 켠후, 내 사진을 참 열심히도 보아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는 말.


너... 이제보니 예술가구나.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들리던지.
별스럽지 않은 사진을 진심을 담아 크게 감탄해주던 그날 밤의 K때문에 나는 비로소 진정한 사회인이 될 수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업무능력 제로임에도 늘 딴 생각에 빠지던, 수시로 눈물보를 터트리며 컴퓨터 자판을 미친듯이 두들기는 나를
등뒤에서 두둔해주던 K의 후배사랑은 회사에서 이미 유명했다.
남들과 늘 다른 생각을 말하는 조금 유별났던 나를 늘 유쾌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이 아이는 우리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예술가다라고 대변해주던 K의 친절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나는 K가 사내에 퍼트린 예술가 타령에 힘입어 사진을 통해 직장이라는 조직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날 이후로 사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 사진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온 사진들을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문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사람들은 나의 사진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해주었다.
심지어 시시때때로 나를 두려움과 당혹감에 빠뜨리게 하던 외국인 사장님과 취미사진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개인면담까지 했다.
(이때 사장은 자신이 아프리카 여행 중 직접 찍은 동물 사진들을 마구 보여주며, 나를 환대했다.)
나는 K덕분에 말없고 내성적인 아이가 아니라, 내 또래 친구들이 나를 평가했듯이
말 참 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재평가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까닭은 단 하나다.
름름이가 아직까지도 집에 못 들어오고 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신입살이가 시집살이다.
어쩜 이리도 악독스러울까.
입사이래 쭈욱 밤샘 야근에 출장.
피로와 호흡곤란으로 구정 휴일의 절반은 병원 신세를 졌다.
인간미 넘치고 공동체 생활을 아는 바른 인재를 추구한다는 사장 새끼와 상사들은
매일 새벽까지 애를 부려먹으며 공동체 생활을 강행하더니 병문안조차 오질 않아, 내 속을 확 뒤집었다.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배려심이 부족한 여우같은 회사 사람들에게서 이리저리 채이며
점점 까닭 모르고 혼나고 주눅 들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20대 초반.
가르치고 혼내도 모자랄 판에, 그 옛날 귀동냥 도제수업마냥 시키고 퇴짜놓고 꾸짖고 비웃는...
게다가 마음 터놓을 또래 동료 한명 없다.
말문이 저절로 닫힐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이 명백함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없이
왜 말을 안하냐며 어린 사람을 닥달하며 이끌어주지 못하는 직장선배라는 사람들.
어쩌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편협한 마음으로 살게 된 걸까.


름이는 뭐든 참 열심이고, 나보다 백배 밝고 영리한 아인데.
어느날 늦은 저녁엔 동생에게서 이런 문자가 오더라.


눈물날 것 같아.
나 진짜 머리 나쁜가봐


그들은 선배로서의 자질이 없다. 속상하다. 정말.


친절한 마음은 모든 모순을 풀어주는 인생의 꽃이다.


톨스토이가 말했다.
요즘은 자꾸 이 문구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 름이 힘내라.
다 잘 될거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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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두근거리던 시간을 무사히 넘겼다.
내 생전 처음으로 한밤에 울면서 119를 불렀고, 누군가 죽을까봐 가슴 졸이며 보낸 5일간의 시간들.
내가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갔다면 지금쯤 나는 어땠을까.
름름이가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고 아득하다.
그리고 아마도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한쪽 폐가 막혔다는 소리를 듣고 응급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살아 돌아왔다.
게다가 너무 건강해졌잖아 ! =_= ;;;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입담이 재밌는 젊은 의사가 서류를 집어던지며 도대체 여기 왜 있는거냐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는 옆에서 치킨은 먹기 싫다고 배부른 소리까지 해댄다. 맞을래? ;;


그간 동생의 숨소리를 예민하게 들으면서 병원에서 잠 못자고 마음 졸였던 시간들이 꿈같다.
취소했던 거제도행 버스표는 다시 예매했다.
가족은 소중하다.



이번이야말로 해피 뉴 이어.
모두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연휴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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