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 정보 도서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10.15 돌의 내력 (4)


군자동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2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첫째, 걸어서 살랑살랑 15분이면 어린이 대공원을 무료로 왔다갔다 산책할 수 있다는 점.
( 지난 일요일엔 물새들을 보고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ㅠ_ㅠ)
두번째, 지하철 2 정거장 거리에 있는 (걸어서 대략 35분) 광진정보도서관을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보도서관은 신간도 대체로 빨리 들어오고, 도서관리 시스템이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다.
내가 대학교 다닐때 교내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해서 좀 알지.
우리 학교. 다른건 몰라도 도서관 하나는 끝내줘서 내가 죽치고 살기도 했는데,
도서관 면접 볼때 면접관이 컴퓨터로 내 기록을 조회하더니 깜짝 놀라셨다.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봤냐고. ;;;
그 덕인지, 중앙 로비에서 남들보다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흐흐
제비뽑기였는지도 모르는데 내 착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걸 미소짓기라고 말 할 수 있을만큼 편한 곳이었다.
그때가 좋았는데 ...
뜬소문으로만 듣던 도서관 헌팅도 당해보고. 으하하 =_=;;;;


어쨌든 이곳 정보 도서관은 1층엔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있어서 어린이들은 엄마와 함께 격리 수용되므로(ㅋㅋ) 시끄럽지도 않다.
매우 좋은 시스템인거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2층 정기 개간물 코너.
내셔널 지오그라픽 영문판과 일러스트, 월간사진 ( 이번년도부터 포토넷으로 대체 ), 월간 디자인 , 그리고 건축 관련 잡지들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월초에 도서관에 가면 너무 좋아서 몸이 붕붕 뜨곤 한다.
내가 이거 때문에 이사를 못 가겠다니까.
랄로가 내년에는 여의도쪽으로 이사가자고 성화인데, 도서관 생각하면 가기가 싫다니까.ㅠ_ㅠ
여의도 가면 국회 도서관으로 가는건가 ;;;;
왠지 정이 안가는데.. 흑흑


각설하고 내가 최근에 읽은 책 한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이름은 바로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돌의 내력>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 표 저 자  :오쿠이즈미 히카루 . 박태규 옮김
원 서 명      : 石の來kt  
비        고  : 아쿠타가와 상, 1994
 


신간 코너를 보다가, 영 손에 잡히는게 없어 중국 문학이나 볼까해서 쭈욱 훓어내려가다가
일본 문학 코너로 살며시 몸을 틀었는데 바로 눈에 띄더라고.
그런데 책을 열어보니 아무도 안 빌려간거야. 완전 빳빳. 손 베이겠더라. =_=
새로 나온건데 잘못 꽂혔나 싶어서 초판 발행일을 뒤져보니 2007년 1월.
어쩜...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순간 이 책이 얼마나 가련하게 느껴지던지 ㅠ_ㅠ
내용이야 어쨌든 내가 구제해주겠노라 결심을 해버렸다.
나의 도서 대출 전적을 보면 이런 이유로 빌린 책이 한 두권이 아니다 ;;


책을 다 읽어본 결과. 나는 이 책이 왜 대출자 0 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몹시 광분한 상태에 돌입해있다.
왜 ! 이 좋은 책이 이렇게 묻혀있는거냐고.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들은 책이 너덜너덜하고 심지어 예약자가 몇 주 줄을 서고 있는데 !
이해하기 쉽게 비교를 하자면, 나는 이 책이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와 질적인 면에서 동급이라 생각하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 경우, 2권짜리임에도 불구하고 마무리가 꽤 어정쩡한데 비해
돌의 내력은 144 페이지에 모든 메세지를 명료하면서 전혀 허기가 지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근래 일본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성의 힘을 담아내고 있어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나까지 유식해지는 환상에 젖어든다 . ㅡ.ㅡ
아. 내가 간만에 책다운 책을 읽고있구나 싶은 성취감도.
새로운 작가를 발견할때 마다 느끼는 감동과 환희는 바로 이런 것이다. > . <
돌의 내력은 ,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살아 돌아온 마나세라는 주인공의 전후 삶에 관해 기술한 심리 소설이다.
마나세는 경제적으로 안정과 여유를 찾아가면서, 전쟁 때 동고동락했던 전우에게서 들은 돌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때부터 미친듯이 돌을 수집하면서 피폐해진 마음을 다스린다.



자네는 평소 길가의 돌 따위는 관심이 없을거야.
정원석이나 석재라면 또 모를까, 여기저기 널려있는 평범한 돌이나 바위는
쓸모도 없고 굳이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아.
그저 평범한 돌멩이 하나에도 지구라는 한 천체의 역사가 아주 선명하게 새겨져 있거든.
예를 들어, 자네는 암석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알고 있나?
암석은 마그마에서 생겨. 벌겋게 달아오른 마그마가 식어서 굳으면 바위가 되는거야.
바위는 또 지표의 풍화작용에 의해 작게 부서지는데, 그것이 돌이야
돌은 다시 모래가 되고, 모래는 또 흙이 되지.
돌과 모래와 흙은 다시 물에 쓸려내려가 호수나 바다에 퇴적하고, 그것이 굳어서
다시 바위가 되는거야. 그리고 바위는 다시 부서져 돌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땅 속 깊은 곳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여러가지 암석으로 다시 태어나서는 마그마에 녹아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광물의 모양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해.
소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대륙조차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을거야. 다시 말해, 자네가 산책길에 무심코 주워든 돌멩이 하나는
대략 오십억 년전, 훗날 태양계라고 불리게 된 곳에서 허공에 떠 있던 가스가 응고해
이 혹성이 생겨난 때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한 단면이자, 물질의 운동이 찰나의 형태로 담긴,
이른바 우주 역사의 응축물이라 할 수 있는 거야




 

위 대사는 이 이야기의 핵이라 말할 수 있는 주인공 마나세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어둠의 주인공 전우가 태평양 전쟁 속에서 한 말이다.
이 글을 보자마자 심장이 떨리더라고.
매우 지적이면서 로맨틱하기까지. 그리고 꽤 의미심장하다. ㅠ_ㅠ
그래. 이제부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덩이를 선물해줘야겠어. =_=
무식한 놈 만나면 그 돌로 처맞을지도 모르지만 ...  =_=  ;;;


눈치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성이란 돌에 관한 지성이다.
더 나아가 돌에게 적용되는 순환의 원리는 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잔인성에 바탕에 두고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이 주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학자 출신이라 그런지 글 속 곳곳에 진중함과 앎의 깊이가 베어있어 오랜만에 나를 업그레드 할 수 있는 보기드문 글이었다.
나는 이 책 보면서 지구과학도 함께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얘기하면 재미없겠지? ㅎㅎ
무언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쓸때 어디까지 적어야 선을 넘지 않는 것일까 항상 고민한다.
이 책은 여기까지 인 것 같다.


읽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려 책을 잠시 덮고 주위를 한번 둘러볼 정도로 긴장감 최고였던 책이었다.
마치 나까지 죄를 지은 것 마냥 강렬한 일체감에 무서움이 엄습했으니까.
작가의 물귀신 작전 . . . 정말 대단하다. -_-b
오쿠이즈미 히카루는 대단히 강렬하고 힘이 넘치면서 섬세한 심리 묘사가 능수능란한 꽤 영리한 작가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 책이 책장 속에서 홀로 반짝반짝거렸던 건 내게 큰 행운이었던 셈이다. ^ ^


 
검은책은 아직도 다 못 읽었는데 =_=;;
하긴 검은책은 몇장 채 읽기도 전에 나를 경악시킨 엄청난 전력의 책이다.
한문장이 한페이지의 반을 차지한다고 상상해보시라. -_-+
처음으로 의심스러웠다. 이 사람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명백한 사실이.
그래서 이 책을 옮겼다는 이난아라는 아가씨의 언어 능력을 의심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가며 읽었더랬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오르한 파묵 자신이 "이 소설은 나의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 내 영혼의 혼합체"라 말하기까지 했기에...
내가 그런 노벨 문학상 작가를 어찌 감히 모욕할 수 있겠어.
니 소설 다른건 몰라도 문체는 너무 후지다고.   =_=

 
아무튼,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반드시 읽기를 강력히 권하는 바다.
아마, 다 읽고 보석을 발견했다고 만세를 외치게 될지도 . 호호
더불어, 이 책에 함께 담긴 <세눈박이 메기>도 몹시 독특한 느낌의 단편이다.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건, 이 사람 소설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참 대박나겠다는 것.
그러고보니 정서적인 면에서는 반딧불의 묘와 느낌이 꽤 비슷하기도.
그 정도로 일본 특유의 민간 신앙과 역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비주얼이 생생히 보이는 수작.




 

신고
글.사진_ 완전한기쁨 트랙백 0 : 댓글 4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