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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1 보통 사람



대학교때,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죽어도 연락을 안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사실 그 친구를 친구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직접적인 연락을 안함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나의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친구와 나는 한 무리 안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리 중 다른 친구가 자연스럽게 내 얘기를 꺼내면, 무심하게 그 이야기들을 넘겨듣는 척 하며,
좋은 일이다 싶을 때 우연을 가장해서 연락을 해왔다.
난 이 아이의 그런 점이 너무 싫었다.
그 친구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해보이는 내가 자기보다 인정받는 여러 상황을 생각해내고는
농담처럼 니가 나랑 다른게 뭔데라고 말하며 나를 깔아뭉개지 못해 안달이었다.
예를 들면, 거시경제학 시험에서 내가 A+을 받고 자신이 A-를 받았을 때, 그 친구는 내가 답안을
어떻게 작성했는지를 꼬치꼬치 물으며, 니가 적은 답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왜 자기는 A-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 친구는 하루종일 씩씩거리다가, 교수가 일관성이 없고 나와 더 친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 시험은 답이 틀려도 상관없는 시험이었다.
교수는 답안이 틀려도 논리전개가 타당하다면,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나는 경제라면 치를 떨고 아무런 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내가 경제학쪽을 선택한 건, 내가 이 분야에 너무나 무지하다는 단순한 사고 방식 덕이었다.
이렇게 어리버리하게 살다가는 먼 훗날 돈 때문에 크게 사기당할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돈이 흘러가는 구조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나 무식했냐면, 이걸 잘 배우면 가계부를 요령있게 잘 쓰는 훌륭한 주부가 될 수 있을거라 기뻐했다.
반면, 그 친구는 나와 달리 경제학이 좋아서 망설임없이 선택을 한 친구였고, 경제에 대한 사리분별이 밝은 아이였다.
어쩌면, 분통이 터지는게 마땅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친구가 왜 하필 나를 자신의 경쟁 상대로 찍었는지 속으로 몹시 원망스러웠다.
여자들 앞에서 이것 저것 따져대는 몹시 피곤한 성격을 견딜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이상한 그녀의 교제방식도 맘에 안들었다.
그러니, 내가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할 일은 없었다.
되도록 상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는 신기하게도 점심 저녁으로 밥을 같이 먹었다.
3학년 1학기 말에 기숙사를 나오고 나서부터는, 처음부터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던 그 친구와 아르바이트도 함께 하고
미팅도 함께 하고 술도 자주 같이 마시며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 친구의 심리를 알았다.
이 친구는 나를 세상 끝까지 밀어내고 싶으면서, 동시에 나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내가 옷을 예쁘게 잘 입는다는 칭찬을 받으면, 나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옷을 골라달라고 그러고,
다른 과 남자들이 학회 사무실로 찾아와 내 사진을 찾아보고 가더라 말하면, 이야 너 좋겠다라고
비꼬면서도 내 옆자리에서 수업을 들으려했다.
난 예쁜 여자가 아니었지만, 애들 말대로 뭔가 생기있게 웃고, 특이한(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 분위기가 있어서였는지
꽤 많은 남자들이 좋다고 쫓아다녔다.
나는 남자들이 나를 쫓아다니는게 동생들 말마따나 신기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들은 나를 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_=
동생들은 가끔씩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언닌 집에서 볼 땐 참 별론데, 밖에 나가서 보면 그나마 좀 나아보여.
부글부글거리며 듣고 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_=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때까지 쭈욱 남녀 공학을 다녔지만, 이렇다 할 사건도 없었고 (고작 있었던 사건이라고는
밤축제 때 남자 애들한테 둘러쌓여서 원 안에서 소심하게 춤 춘거?
고 3 쉬는시간에 필통 없어졌다 다시 돌아왔는데, 이 여자야.. 칠칠맞지 못하게 필통을 아무데나 놔두고 다니는거야.
정신 챙기고 공부 열심히 해라. 라는 쪽지를 받은거 =_= 뭐 이 따위거 밖에 없다 ㅡ.ㅜ),
과 내에선 이쁘다 소문난 애들끼리 무리를 지어 따로 다녔기 때문에, 나는 내가 관심을 받을때마다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나보다 더 당혹스러워하는 이가 바로 이 친구였다.


이 친구는 누군가가 나에게 고백을 할 때마다, 우연찮게도 그 자리를 목격하거나 소문의 핵을 가장 먼저 접했다.
그게 나한테는 불행이었다.
막 복학해서 친구가 없다는 남자 선배한테 어정쩡하게 붙잡혀서 몇 번 밥과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었는데,
친구들이 입을 모아 그 선배 우리한테는 한번도 아이스크림 사준적이 없다고 날 놀려대서 내가 그런거 아니라고
친구들 열댓명을 싹 몰고 가서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라고 일을 친 적이 있다.
그때 그 선배는 사색이 되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알고보니, 선배는 남에게 한없이 퍼주는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휴학을 하고 외로웠던 찰나에 만난 인연이라 선배와 나는 투닥거리면서 서서히 친해졌다.
그 후에 선배가 과대표가 되어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나는 나도 모르게 과의 중심에 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선배는 나중에 나를 속인 집주인(부부가 같이 산다고 말했지만, 사실 별거상태로 아파트에 혼자 살았고
그 집에 날 끌어들여놓고 저녁마다 동네방네 떠나갈듯 부르스를 틀어놓고 밥을 같이 먹자고 식탁을 차리던 작자)에게서
집세를 돌려받으려고 그 망할 놈 앞에서 무릎을 꿇어주기도 한 고마운 사람이다.


하여튼 이 선배가 새벽에 술 먹자고 불러서 나갔더니, 얼굴만 겨우 아는 남자선배들이 궁상맞게 모여 자작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날 왜 부른거야?
혼자 있기 민망했던 나는 집이 근처인 그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는 쏜살같이 달려오면서도 왜 선배들이 너만 불렀냐며 나를 닥달했다. =_=
날 부르면 너도 올거라 생각했겠지라고 좋게 말했지만, 그 친구는 꽤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남자선배들 다 모아놓고 한 말이 "얘 별명이 뭔줄 아세요?" 였다.
- 얘는 통발이에요
예상치못한 말을 들은 선배들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이유를 물었다.
- 남자를 통발에 물고기 걷어올리듯이 끌어들이거든요.
주말마다 다른 학교 남자애들 데려와서 캠퍼스 소개시켜 주는게 취미에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할때도 어떤 남자가 얘한테 반해서 비오는 날 얘한테 우산 주고 자기는 비맞고 가구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얘 진짜 싫어했잖아요. 몸 약한 척하면서 공장 남자 다 후린다고...
XX에서 차끌고 온 남자는 얘랑 밤 샐려고 집에 안갔구요.
도서관 알바할땐 얘보고 결혼하자고 고백한 남자도 있어요.
버스 타고 가다가도 남자가 좋다고 따라와요.
얜 인기 많아요. 선배들이 이러시지 않아도 돼요.


나를 칭찬하는 듯 했지만, 꽤 악랄한 조롱이었다.
이 친구가 나에게 저지른 수많은 악행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이런 저런 일들이 쌓여 이 친구가 내 친구들에게서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고 학교를 일주일간 안 나왔을때,
당사자인 나만 그 친구가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설득해 술자리를 마련하고 그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 친구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한없이 마음이 여린 자신이 세상사에 적응을 못해 강한 사람들이 툭툭 내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리곤 술을 연거푸 마시며, 나를 벼락같이 껴안고는 나 미워하는거 아니지? 라고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했나.
나야말로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런거 아니라고 그날 그 아이 등을 한없이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나
나는 절대 내 나이 또래 남자를 향해 먼저 웃으며 말을 걸지 않는다.
마음이 한없이 꼬이고 퉁명스러워졌다.
얽히는 남녀관계에 재수없게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예쁘지 않은 여자가 더욱 못생겨진 이유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내 인생에 악영향을 끼친, 우리는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자처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린 친구잖아라고 술을 즐겁게 마시던 그들이 사실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도 떠오른다.
이어,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며 항상 내 전화가 먼저이길 바라는 몇 몇 사람들이 나에게 얻을게 있을 때 요령있게 연락을 할 때면
인생은 왜 이렇게 덧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이런 망상으로 한없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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