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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6 친절한 마음 (1)


내가 처음 회사다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말이 참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만해도 나는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먼저 살갑게 말을 걸만큼 에너지가 넘치지 못했다.
나의 주특기는 무관심이다. 미움도 사랑도 특별한 의도도 없다.
상대에 대한 무시나 경멸도 아니다. 그저 관심이 없을 뿐.
그런 태도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대표하는 하나의 단어였다.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쓰는 아이.
언제봐도 독립적이고 똑똑하고 재주많은 사람.


주변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가 혼자 노는 모습들을 동정하기보다 동경했었다.
심지어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아침 저녁으로 매일 스케줄 맞춰가며 밥을 같이 먹는 일들이 고단하고 부질없다 생각하여
가끔씩 연락도 안하고 홀로 밥을 씩씩하게 먹는 모습까지도 감탄했다.
하여튼. 안희정 넌 대단하다니까. 니가 전교를 왕따시킨다.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은근히 외로웠다.
나. 그렇게 강한 사람 아닌데...
하지만. 이상하지.
이 외로움은 가짜였는지, 누군가 다가오면 금새 귀찮다는 생각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나는 본의아니게 나를 적극적으로 좋아해준 몇몇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은데 너는 왜이렇게 안친해지는건지 모르겠다고 투정을 하던 사람들이
때로는 나를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를 많이 좋아해서, 결국은 미워하게 된 사람들 때문에 인생이 조금 괴로웠다.
그들은 모른다.
나는 누군가와 급속히 친해지는 과정에서 오는 부작용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었다.
나는 기만과 과장에 지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신입이라는 딱지를 달고 경력만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에 어렵사리 입사했을 때는
윗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은 케이스였다.
어린 것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고, 지 할일만 딱딱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내가 버릇없다고 나서서 성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겉모습만큼은 친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친절했던 사람은 내 바로 윗 사수였던 K.
K는 본래 뼈속까지 친절한 성품의 사람은 아니다.
득이 없는 일엔 굳이 나서지 않는 영리하고 냉정한, 전형적인 AB형의 성격을 보여주는 양면성이 몹시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가 자신의 첫 후배라는 이유 하나로 나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주었다.
입사한지 한달이 지나도 토막말만 겨우 겨우하는 음침한 나를 외근 핑계삼아 떡볶이집에 데려다주었고,
언제나 내 책상 앞에 먼저 다가와 재밌는 농담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화장실에 틀어박혀 오전내내 대성통곡을 했을만큼 나를 호되게 혼내며 업무를 철저히 가르쳤을 때는,
자신을 버릇없이 째려보며 밥먹을 기분이 아니다라고 내뱉는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가 따뜻한 칼국수를 사먹이며 마음을 달래주었다.
어느 날인가는 시무룩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나를 불러 아직 여자친구도 안태워줬다는 갓 뽑은 스포츠카로 집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지나가는 말로 저 그 차 좋아해요. 좋으시겠어요라고 했던 말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 아니 내가 이걸 왜 타요. 여자친구나 태우세요. 저는 그냥 지하철 타고 갈께요.
라고 말하는 나를 애써 태웠던 건 이번이야말로 이 아이의 말문을 열어보겠다는 심산이었을지도.
목적이 무엇이었든간에 그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옆좌석에 앉아 불빛이 일렁이는 새까만 한강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나도 모르게
아 예쁘다. 사진 찍고 싶다라고 중얼거린 것이다.


- 너 사진 찍을 줄 알아?
- 뭐 그냥 심심해서 동호회 좀 나가요.


K는 내 입에서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몹시 신나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아 - 이 아이는 사진을 좋아하니 사진 이야기를 하면 말을 좀 더 많이 하겠구나 판단했던 모양이다.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사진 이야기만 해대는 K의 친절함에 결국 굴복하여 가방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고 말았다.
그때 친절한 K는 차를 도로 모퉁이에 세우고 보조등을 켠후, 내 사진을 참 열심히도 보아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는 말.


너... 이제보니 예술가구나.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들리던지.
별스럽지 않은 사진을 진심을 담아 크게 감탄해주던 그날 밤의 K때문에 나는 비로소 진정한 사회인이 될 수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업무능력 제로임에도 늘 딴 생각에 빠지던, 수시로 눈물보를 터트리며 컴퓨터 자판을 미친듯이 두들기는 나를
등뒤에서 두둔해주던 K의 후배사랑은 회사에서 이미 유명했다.
남들과 늘 다른 생각을 말하는 조금 유별났던 나를 늘 유쾌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이 아이는 우리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예술가다라고 대변해주던 K의 친절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나는 K가 사내에 퍼트린 예술가 타령에 힘입어 사진을 통해 직장이라는 조직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날 이후로 사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 사진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온 사진들을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문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사람들은 나의 사진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해주었다.
심지어 시시때때로 나를 두려움과 당혹감에 빠뜨리게 하던 외국인 사장님과 취미사진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개인면담까지 했다.
(이때 사장은 자신이 아프리카 여행 중 직접 찍은 동물 사진들을 마구 보여주며, 나를 환대했다.)
나는 K덕분에 말없고 내성적인 아이가 아니라, 내 또래 친구들이 나를 평가했듯이
말 참 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재평가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까닭은 단 하나다.
름름이가 아직까지도 집에 못 들어오고 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신입살이가 시집살이다.
어쩜 이리도 악독스러울까.
입사이래 쭈욱 밤샘 야근에 출장.
피로와 호흡곤란으로 구정 휴일의 절반은 병원 신세를 졌다.
인간미 넘치고 공동체 생활을 아는 바른 인재를 추구한다는 사장 새끼와 상사들은
매일 새벽까지 애를 부려먹으며 공동체 생활을 강행하더니 병문안조차 오질 않아, 내 속을 확 뒤집었다.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배려심이 부족한 여우같은 회사 사람들에게서 이리저리 채이며
점점 까닭 모르고 혼나고 주눅 들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20대 초반.
가르치고 혼내도 모자랄 판에, 그 옛날 귀동냥 도제수업마냥 시키고 퇴짜놓고 꾸짖고 비웃는...
게다가 마음 터놓을 또래 동료 한명 없다.
말문이 저절로 닫힐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이 명백함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없이
왜 말을 안하냐며 어린 사람을 닥달하며 이끌어주지 못하는 직장선배라는 사람들.
어쩌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편협한 마음으로 살게 된 걸까.


름이는 뭐든 참 열심이고, 나보다 백배 밝고 영리한 아인데.
어느날 늦은 저녁엔 동생에게서 이런 문자가 오더라.


눈물날 것 같아.
나 진짜 머리 나쁜가봐


그들은 선배로서의 자질이 없다. 속상하다. 정말.


친절한 마음은 모든 모순을 풀어주는 인생의 꽃이다.


톨스토이가 말했다.
요즘은 자꾸 이 문구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 름이 힘내라.
다 잘 될거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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