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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6 철 지나 다시 떠오른 이야기




1.  Insecte

어제밤, 클레르 카스티용의 <로즈 베이비>라는 책을 읽었다.
클레르 카스티용. 이 여자는 도서관을 들를 때 마다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작자다.
160평방미터의 자료실 서가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도대체 읽고 싶은 책이 없군.
이렇게 가벼운 절망에 휩싸일때면 맨 마지막 책꽂이에서 이 사람은 나 들으라는 듯
허공에 대고 이렇게 입을 뻐끔거린다.

&quot;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quo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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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엄마와 단둘이 뒷산을 걸었다.
서울만 올라가면 전화가 싫다며 연락두절하는 불효녀가 얌전히 승복했다.
여기는 거제도니까. 엄마의 세계다.
난 그동안 엄마와의 단독 대면을 두려워했다.


 
거제도행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명절선물을 사러 부리나케 동네 슈퍼를 전전했다.
엄마는 딸이 빈손으로 집에 오는 걸 싫어한다.
이왕이면, 10분 거리에 사시는 큰아버지댁 선물도 사오면 더 좋고!
이게 우리 엄마가 생각하는 다 큰 딸래미의 도리다.
나는 속으로 우린 가족이잖아! 이게 뭔 격식이여 라고 투덜거린다.
엄마는 내가 집에 누워서 빈둥거리면 넌 손님이 아니란다. 집안일을 도와야지라고 퉁을 주고
이렇게 명절이 되면, 남의 집에 들이닥친 집들이 손님 취급하며 빈손인 나를 꾸짖는다.
그러나, 동네 슈퍼를 이 잡듯 들락거려도, 그럴듯한 선물세트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샀어야 했는데.
랄로와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앞일의 뒷감당을 상상하며 뒤늦은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
세자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늘이 드리워진 길바닥에서 짜증을 내다가 좀 더 생각을 해보자며 쭈그리고 앉았을 때,
그 산을 보았다. 
가까운 아파트 뒷산 너머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묘객 5명이 소실점이 되어 산 중턱을 총총이 내려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의 가슴은 소녀처럼 쿵 내려앉았다.
이야. 저 산에도 묘가 있구나...
선물 걱정은 제껴두고, 내일은 저 뒷산이나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엄마가 나도 같이 가자며 모자를 찾아 쓰시는 것이다.




3.  엄마가 뿔났다


김수현씨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초기작 <목욕탕집 사람들>에 등장하는 전 등장인물이 하물며 단역까지 딱총 쏘듯
자기 할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를 쓰며 나불대는 걸 보고 그만 정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확실히 김수현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 나오는 작품은 몇 편만 테스트 삼아 보다가 아직도 딱총을 물고 있구나 싶어서 중도포기한게 대부분이었고,
이 여자가 이제 좀 사람같구나 싶었던 작품이 <부모님 전상서>였다.
그리고 그때 풀린 마음으로 요새 매주 찾아보는 드라마가 <엄마가 뿔났다> 라 말할 수 있겠다.
요즘, 이 드라마는 엄마 김혜자가 받은 1년의 휴가로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 도대체 말이 되느냐. 이 드라마 막판에 환타지로 가는 거 아니냐. 실망이다.
- 세상 모든 엄마들이 대게 일생을 그렇게 사는데 뭐가 잘나서 1년 휴가를 요구하느냐
- 우리 시어머니가 저렇게 나오면 전 정말 못 살것 같아요. 아니 며느리만 뭔 고생이래요.
- 내 보기엔 남편이 젤 불쌍타. 남편에게도 휴가를 주는게 공평하지 않아?
- 둘이 번갈아 1년씩 집 나가면 집안꼴 좋겠다 !
- 저것도 아들 딸이 그나마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니 요구할 수 있는거지. 나같은 사람은 ...
- 돈도 많다 ! 평생 아둥바둥 돈 아끼며 살았다는 여편네가 다 늙어서 한달 집세로 60만원을 쓴다는게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야?
-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집에서 1년 쉬는거랑 뭐가 다른건데. 굳이 나가 살 필요있나



이 드라마의 작가도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닌, 제 3자인 나는 이토록 부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훑어보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나는 과연 엄마에게 저런 휴가를 줄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이 생각만을 지배적으로 하며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자 다짐했던 나는 이 사회의 외계인이었다.



엄마가 된 이상 희생은 당신 스스로 선택한 당연한 의무라고 말하는 꿈도 야무진 50% 이상의 아들 딸들과 부딪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저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절반이 품은 진짜 마음이라면 나는 엄마를 가끔은 가여워 해 줄 마음 넉넉한 자식을 키워낼 자신이 없으니
엄마가 되는 걸 포기하고 싶다.
왜냐면, 나는 늘그막에 휴가를 한꺼번에 받아내는 김혜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자식은 아무리 착하게 키워도 부모의 은혜를 잊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나는 나라는 존재로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더없이 착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영악해질 수 있는 딸년.
그러니 나는 아마도 클레르 카스티용이 말하는 <로즈베이비>의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이미 늙어버린 엄마에게 휴가를 준다는 발상 또한 얼마나 건방진 생각인가.
왜 우리는 엄마가 되면, 자식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픈 마음마저 죄스러워 해야하나.
엄마라는 타이틀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까.





4.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라는 책에서 스티브 도나휴는 이렇게 말했다.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에는 꼭대기가 따로 없어서,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드디어 해냈다. 이제 부모 역할을 끝냈다"라고 외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도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이다 . 
그러니 오아시스가 나타나면 망설이지 말고 반드시 쉬어가라.



 
5. 

음악을 안 들은지 꽤 됐다.
몇 달째 mp3 플레이어에 변하지 않고 담긴 노래는 트란실바니아 ost 가 유일하고,
신곡이 하나씩 나올때마다 당일치기로 듣고 빼는걸 반복하다 며칠 전에 펜타포트 라디오 실황 녹음본을 추가했다. 트라비스만.
정정하자면, 모든 음악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다 흘린다.
m-net을 통해 뮤직비디오로 다시 들은 유희열 소품집 여름날도 가사가 마음에 안든다.
왜 저렇게 쓴거지? 
유난히 맘에 안차는 노래 한 곡을 집요하게 매도하고, 인터넷으로 예약 주문한 소품집을 취소했다.
설마 이 다음에 음반값 뛰는 건 아니겠지... =_=;
음반 재태크 걱정을 잠깐하다가 1만장 더 찍었다는 소리에 악마처럼 안도하며 깨끗이 마음을 접었다.ㅋ
기획사에 새끼 고양이 얼만지나 문의해봐야겠다고 여유작작 악담을 한다.
원 세상에. 새끼 고양이를 위한 소품집이었단 말이야? 그저 내 감상일 뿐이다.
랄로는 여자는 얼굴 예쁘면 모든게 용서된다고 뮤직비디오 속에서 이 남자 저 남자 예쁘게도 갈팡 질팡하는 신민아를 두둔한다.
그 말에 나는 정색을 하며, 왜 나는 가끔씩만 예뻐 보이는거냐고 절규했고,
랄로는 도대체 어쩌자는거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뒤틀린 심사를 바로 잡으려고 다시 찾아들은 곡이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다.
작년에도 아스팔트 쩔쩔 끓을 때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차이을 두자면 그땐 미궁을 안들었고, 올해는 미궁을 듣는다는 것이다.
17분짜리 미궁을 6분 가량 듣다가 여러번 심장을 쿵쿵 놓치고 결국 꺼버렸다.
미쳤다. 볼륨을 크게 해서 온 동네에 귀기가 넘친다.
미안해요. 동네 어르신들.
어제는 엑소시스트를 보았고, 오늘은 미궁을 듣고 내일은 내 다리 내놓으라는 전설의 고향을 볼 예정이다. =_=
정말 여름이네. 공포영화광이 이렇게 소심해졌으니... 늙었다고 또 낙담한다.
75년도 초연 녹음은 도저히 들을 수 없다 판단하고 이번엔 무서운 마음을 다잡으려고,
황병기 선생의 곡 해설이 함께 한 동영상을 찾아 들었다.
휴... 엄청난 17분이다.
황병기 선생 얼굴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
미궁. 이건 엄마들을 위한 살풀이곡 같다.
요즘 엄마 생각 너무 많이 하나. 전화는 죽어도 안하면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여러 번 음악과 얼굴이 겹친다.
너무 좋은데, 이곡. 얼굴없이 들으라면 다시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밤에 듣지 마세요.


 




가야금. 장구 : 황병기   /  목소리 : 홍신자  /  작시 : 서정주
남창  : 김경배  /  대금  : 홍종진  /  거문고 : 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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